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 (유서) 라도 첨부되어야하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 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같은 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라빛 노을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한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져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하여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어버리고
작을 때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와 말을 더듬는 장애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었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다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에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쫒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 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 우파니 샤드> 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 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음으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본래 무일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밭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 없는 이.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간단 명료한 것을 즐기는 성미이니까.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거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은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다비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중 같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 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사세송(辭世頌) - 석옥청공(石屋淸珙)

白雲買了賣淸風 백운매료매청풍
흰 구름을 사려고 맑은 바람을 팔았더니

散盡家私徹骨窮 산진가사철골궁
살림살이가 바닥나서 뼈에 사무치게 궁색하네.

留得數間茅草屋 유득수간모초옥
남은 건 두어 칸 띠로 얽은 집 하나뿐이니

臨別付與丙丁童 임별부여병정동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마저 불 속에 던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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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는 그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그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는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때도 이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떨어져 내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때 만큼 아름답지 않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생사관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죽어가는 것이다.


현자는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죽음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정스님 ...살때와 죽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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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육체라는 것은....

2010.03.11 15:40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21 주소복사












이 육체라는 것은
마치 콩이 들어찬 콩깍지와 같다.
수만 가지로 겉모습은 바뀌지만
생명 그 자체는 소멸되지 않는다.
모습은 여러 가지로 바뀌나
생명 그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은
우주의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불멸의 영혼을 어떻게 죽이겠는가.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법정스님......이 육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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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얼마나 사랑했는가...

2010.03.11 15:45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22 주소복사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다'.


타인을 기쁘게 해줄 때
내 자신이 기쁘고.
타인을 괴롭게 하면
내 자신도 괴롭다.

타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타인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의
내적인 평화도 함께 따라온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우러난다
감정은 인간안에 깃들지만
인간은 사랑 안에서 자란다.






법정스님......얼마나 사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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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2010.03.11 15:53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23 주소복사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법정스님.....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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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추도사] 소설가 정찬주

2010.03.12 15:08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26 주소복사









[법정 스님 추도사]  소설가 정찬주


눈앞이 막막합니다.
무엇이 바빠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연둣빛 봄날을 마다하시고 가십니까.
영혼의 모음 같다던 뻐꾸기 소리를 더 듣지 않으시고 가십니까.
스님의 속가 외사촌 조카인 현장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스님을 길상사로 모시고 있으니 상경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현장 스님도 목이 메고 저도 목이 멨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이승의 옷을 벗고 내생의 새 옷을 입으셨습니다.

스님.
찻물 올리고 향을 사르며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죽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스님께서는 ‘온 몸으로 살고, 온 몸으로 죽어라’는
어느 중국 선사의 말씀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스님의 일생이 그러합니다.

스님은 초등학교 때 등대지기가 되겠다는 꿈도 꾸어 보고,
청년기에는 인간 실존에 대해서 괴로워합니다.
동족끼리 피 흘린 6ㆍ25전쟁은 스님을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세속은 스님이 살아야 하는 번지수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여 효봉 선사의 제자가 됩니다.
해인사 선방 시절에는 한 아주머니가 장경각의 고려대장경판을
‘빨래판 같은 것’이라고 말하여 스님은 한글 역경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이후 강원을 마치고 운허 스님을 도와 ‘불교사전’을 편찬합니다.
그 인연으로 서울에 올라와 봉은사 다래헌에서 사십니다.
현대문학에 ‘무소유’를 발표하시어 문명을 떨치시기도 하고,
장준하 함석헌 선생 등과 반독재투쟁에도 간여합니다.
그런데 인혁당 사건은 스님을 몇 달 동안 잠 못 이루게 합니다.
한 무리의 젊은이가 죄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만행을 보면서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습니다. 그러면서도 수행자로서 깊이 자책합니다.
어떤 운동도 인격 형성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스님은 송광사로 내려가 불일암을 짓고 텅 빈 충만의 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나 불일암마저 번다해지자 강원도 산중 오두막으로 가 정진하시는 한편,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인 길상사를 창건하시어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의지처가 되게 하였습니다.

스님.
저는 스님의 내면을 조금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영화 ‘서편제’ 조조 프로를 보시면서 맑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소년기부터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독을 견디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을 거름 삼아 깨달음의 꽃을 피우신 분입니다.
중학교 때 납부금을 내지 못하여 울면서 배를 타고 목포로 갔던 스님.
진도 쌍계사로 수학여행을 가서 절을 떠나기가 아쉬워 울었던 스님.
효봉 스님을 시봉할 때 고방 호롱불로 ‘주홍글씨’를 읽다가
야단 맞고 유난히 좋아했던 책을 아궁이에 태워버렸던 스님.

사람들은 더러 스님을 수필 쓰는 문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스님에게 글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님께서 하루에 한두 시간 글 쓰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수행자로서 정진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관념적이고 맹목적인 선(禪)을 거부하시고 선방 울타리를 벗어나
‘내 손발이 상좌’라며 홀로 수행하신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는 스님이야말로 한국의 수행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 분이라고 믿습니다.
스님께서 보여주신 맑은 모습 속에 한국불교가
다시 태어나는 길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스님.
저는 스님의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다만, 스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을 보여
스님의 가시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발원하겠습니다.
그것이 스님을 떠나보내는 제자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40대에 미리 써놓았던 유서 한 대목을 읽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 모국어를 더 사랑하고
출가 사문이 되어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스님! 가시는 발걸음 부디 가벼우소서.
화엄경의 선재 동자도 만나시고,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에 가시어
원(願)을 이루소서. 한반도에 다시 오시어 못 다한 일들 이루소서.




정찬주 합장




류시화-지금은 모든 논란을 접고 슬픔으로 문을 닫아 걸 시간입니다.

2010.03.16 00:56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29 주소복사







슬픔은 때로 우리를 더 깊어지게 합니다.
슬픔은 우리의 영혼을 순수의 자리로
더 가까이 가게 해줍니다.
그것이 슬픔이 가진 힘입니다.

법정 스님께서 '말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모든 책을 절판시키라 했다는
유지가 공개되면서 그 문제를 놓고
갈수록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애도의 기간입니다.
모든 논란을 접고 슬픔으로
문을 닫아 걸 시간입니다.








"깨진 종처럼 침묵하라."
언젠가 스님과 지방 여행 중에
어느 박물관에 놓인 깨진 종을 가리키면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스님이 세상을 떠난 이 며칠,
우리 모두는 깨진 종과 다름 없습니다.
깨진 종이 소리를 내면 시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책 절판의 뜻을 전하셨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두말없이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길상사나 맑고향기롭게측에서는
거듭 언론에 이 사실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해당 출판사 발행인들을 불러
따듯한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출판사 발행인들은 스님의 글과 사상이
널리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해 오신 분들이며
스님과의 인연이 각별했던 분들입니다.
이 덧없는 절판 소동에서 그분들이
마치 이익과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오해받는다면 옳지 않으며
스님께서도 원치 않으시는 일입니다.
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저는 저의 이름으로 엮은
스님의 책 <산에는 꽃이 피네>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대해
아무 이의 없이 스님의 유지를 따를 것입니다.







어제 14일 밤, 비를 맞으며
스님의 유해가 길상사에 도착했습니다.
그 육신은 한줌의 재로 남았지만
아직 스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뭣하러 49재를 지내겠습니까.
그것은 아직 스님의 혼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말의 세계를 떠나 오로지 침묵으로 존재하는
그분과 우리가 침묵으로 내밀히 대화할 시간입니다.
적어도 49재가 끝날 때까지,
우리 모든 논란을 접고
애도와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서귀포에서 마지막 겨울을 나시면서
저와의 대화 중에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사윤회의 사슬을 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교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상기시키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생에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고 신세를 졌다.
다시 태어나 그 빚을 갚을 것이다."
그 말씀과 결연한 의지에서
저는 참된 보살의 면모를 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병을 떨치고 일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시면서도
늘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어서 일어나, 그동안 병치레하느라
신세진 많은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법정 스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 글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주에 인도로 떠납니다.












당신은 행복한가?


올 겨울 나는 석창포와 자금우,
이 두 개의 작은 화분을 곁에 두고
눈 속에서 지내고 있다.
초겨울 꽃시장에서 천 원씩을 주고
데리고 온 살아 있는 생물이다.
석창포 분에는 조그만 괴석을 곁들여
수반에 두어야 어울린다.
자금우는 차나무 잎처럼 생긴 그 이파리와
줄기에 매달린 빨간 열매가 아주 잘 어울린다.
이 두 개의 화분이 없다면
겨울철 산방은 춥고 메말랐을 것이다.
밝은 창문 아래 두고 이따금 두런두런 말을 건네고
눈길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는 남이 아닌 한 식구가 된다.

이 애들이 내 겨울을 향기롭게 받쳐주고 있다.
며칠 전 받은 뒤늦은 편지에
스님은 요즘 행복하냐고 불쑥 물어온 사연이 있었다.
이 물음을 받고 나는 세삼스레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우리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하는 기준도
행복 여하에 달린 거라고 생각된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일을 생각한다.
이것이 행복의 기초 단위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사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예쁜 찻잔을 골라주고,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손녀를 안아주는 일에서
그날의 행복을 누린다.
며느리를 귀엽게 여기고 사랑하는 그 마음에
행복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행복은 이웃과의 관계에 있다.
어떤 어머니는 애들 아버지가 퇴직을 하면
고향에 돌아가 된장을 맛있게 담아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다.

벌써부터 '솔바람 맑은 물 OO된장'이란 이름도 지어 놓았다.
전해 듣는 마음도 싱그러워진다.








남을 행복하게 하면 자신도 행복해진다.
현대인들은 행복의 기준을 흔히
남보다 많고 큰 것을 차지하고 누리는 데 두려고 한다.
수십억짜리 저택에, 또 몇 억짜리 자동차에,
무슨무슨 회원권을 지녀야 성에 차 한다.

물론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이므로 한마디로
이렇다 저렇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 가르침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13세기 독일의 뛰어난 신학자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들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석창포와 자금우 화분을 햇볕을 따라 옮겨주고
물뿌리개로 물을 뿜어주면서
그 잎과 열매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장작이 타는 난롯가에 앉아 돌솥에서
찻물이 끓어오르는 '솔바람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을 때도 내 가슴은 따뜻해진다.

한밤중 이따금 기침을 하면서 깨어난다.
창문에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창문을 열었을 때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온 천지가 흰 것을 보면 내 가슴이 또한 따뜻해진다.

이른 아침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밖에 나가 
눈 위에 토끼나 고라니 발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볼 때 내 가슴은 따뜻해진다.







한 해가 저물 무렵 편지 꾸러미를 풀어 챙기다가
뜻밖에 이제는 고인이 된 친지의 편지를 발견하고
한 줄 한 줄 사연을 읽어 내려갈 때,
다시는 더 만날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의 아득한 거리를 두고
덧없는 인생사를 되돌아보면서 내 가슴 한쪽에는 애틋한 흐름이 있다.
우리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살아 있을 때 이웃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자리를 잃지 않고 사람 된 도리를 지켜갈 수 있다.

영국 속담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비슷한 여건 속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자기 처지에 고마워하고
만족하면서 밝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불평과 불만으로 어둡고 거칠게 사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더 물을 것도 없이 나는 행복의 대열에 끼고 싶지
불행의 대열에는 결코 끼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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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산을 떠나다


류시화 



"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 바닷가에서 겨울을 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얼마 전,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줄곧 병원에 갇혀 계시다가
오늘 오전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2시 52분에 제자 스님들과
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렇게 이 사바 세계와 육신을 떠나셨습니다.
허공에 떠나는 스님의 혼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

치료되었다고 믿었던 폐암이 작년 재발하면서부터
강원도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치병을 하면서
스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기침이 심했고,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체중이 점점 줄어 나중에는 걷는 일조차 힘들어질 때
스님은 자주 그러셨습니다.
이 육신이 나를 가두고 있다고.

새장에 갇힌 새를 보는 것 같아
뒤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제 그 새가 날아갔습니다.

"나는 죽을 때 농담을 하며 죽을 것이다.
만약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추장스런 것들을
내 몸에 매단다면 벌떡 일어나 발로 차 버릴 것이다."

20여 년 전부터 스님께서 해오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방사능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오셔서도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누구든 스님을 쉽게 놓아 드릴 수가 없었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저런 치료로
고생하시다 입적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법정 스님과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모습이고 종착점입니다.
어디에서 여행을 마치는가보다
그가 어떤 생의 여정을 거쳐왔는가가
더 중요함을 우리가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2009년 6월 스님께서 제자 두 명과 저를 포함해
가까운 사람 서너 명을 불러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연한 의지였고, 특별히 스님께서
우리를 불러 공식적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따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결국 송광사에서 불교 예법에 따라
다비식을 치르기로 정해졌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그때 스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장례식과 다비식이 어디서 치러지든,
어느 장소에서 그의 육신이 불태워지든,
그것은 단지 무상함이 드러난 결과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스님도 그렇게 여기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작년에 하셨던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 여겨져
여기에 밝히는 것뿐입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그나마 몇 마디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시던 며칠 전,
스님께서 침대맡으로 저를 손짓해 부르셔서
저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저도 지금 스님께 그 말씀을 드립니다.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이 보잘것없는 한 중생을 만나 끝까지 반말 한 번 안 하시고
언제나 그 소나무 같고 산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이 삶이 고통이고 끝없는 질곡이라 해도 또다시 만나고 싶다고.
해마다 봄이면 "꽃 보러 갈까? 차잎 올라오는 것 보러 갈까?
바다에 봄 오는 것 보러 갈까?" 하고 연락하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간다."

오늘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귀포를 떠나기 전 죽음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마 육신을 벗고 맨 먼저 강원도 눈 쌓인 산을 보러 가셨겠지요.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법환리 앞바다도 슬쩍 보러 가셨겠지요.
오늘 큰 산 하나가 산을 떠났습니다.
이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 산이 한동안 텅 비겠지요.
그러나 곧 꽃과 나무들이 그 공의 자리를 채울 겁니다.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덜 슬프다는 것을 오늘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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