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강한 햇살이 푸른 나무위로 쏟아 진다.

한쪽에 뭉개 구름이 훵한 눈으로 날 응시하고 있다.

어제 다듬어준 화초는 이제 제법 제모습을 찾아 가고 있다.

갑자기 잘리워진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직갑 했을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이렇게 살아 남기 위해서 나름의 방책을 세운다.

 

하루 밤 낯을 혼자 보냈다.

간혹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은 중요한 삶의 일부일지 모른다.

모든 소음에서 해방되고 침묵만이 나와 함께 한다.

아파서 이렇게 혼자 있을때 문득 자기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언어가 문을 닫은 침묵속에서 내 깊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일상으로 함께 걷고 있는 저 그림자는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산다는게 무엇인가?

원초적인 물음이 고개를 든다.

살아가면서 항상 하는 질문이다.

우리의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과제는 침묵속에서 나와 침묵속으로 사라져 간다.

 

오후에도 화분에 물을 주어야 겠다.

이곳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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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사람끼리 함께 있을수 없을때 인간사에서는 그늘이 진다.

우수의 그늘이 진다.

그런데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

사람은 분명히 홀로 태어난다. 그리고 죽을 때에도 혼자서 죽어 간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도 혼자서 살수 밖에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저마다 홀로 서 있듯이,

지평선 위로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휘적희적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시인의 날개를 빌리지 않더라도 알만한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업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따로 해야하고 행동도 같이 할수 없다.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그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인연의 주제자는 그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것은 어떤 종교의 도그마이기에 앞서 무량겁을 두고 되풀이될 우주 질서 같은 것이다.

죽네 사네 새상이 떠들썩하게 만난 사람들도 그 맹목적인 열기가 가시고 나면,

빛이 바랜 자신들의 언동에 쓴웃음을 머금게 되는게 새상일 아닌가.

모든 현상은 고정해 있지 않고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늘 함께 있고 싶은 희망사항이 지속되려면,

들여다 보려고만 하는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야 할것이다.

서로 얽어 매기 보다는 혼자 있게 할 일이다.

거문고가 한가락에 울리면서도 그 줄은 따로따로 이듯이.

그러한 떨어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영혼의 모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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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척도)로 세상을 재고, 인생을 재려 한다.

그래서 그 자가 표준인것 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남이 넘어다볼 수 없는 슬픔의 뜰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곳 그사람의 무게일 수 있다.

 

육신의 비애,

즉 육신이 우리들의 현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방황한다.

그렇다. 이 모순과 갈등이 있음으로서

우리는 또한 본질적인 자유와 평화를 애타게 바란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는 표현은,

우리 안에 갈등과 모순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통해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열반이란 원래 번뇌의 불을 꺼 버린 평온한 상태를 가리킨 말이다.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그 해탈의 경지가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요즘말로 하자면

해탈은 '자유'를 가리키고,

열반은 '평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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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2007.02.23 01:05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1503 주소복사

길상사 내의 관음보살상입니다.



받아들여라.
어느 것 하나 거역하지 말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러면서도 그 받아들인 안에서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본래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라,

삶은 영원한 현재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그리고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고 이 다음으로 미루게 되면 현재의 삶이 소멸되고 만다.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임을 잊지 말라.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자신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득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신비로운 세계다.
홀로 있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고독한 존재다.
그 고독과 신비로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거듭거듭 안으로 살피라.





규칙적인 명상의 시간을 가지라.
우리가 아무 잡념 없이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그때 우리는 곧 부처다.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이 드러난 것이다.

깊은 명상 속에 있을수록 의문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에게 물을 일이 하나도 없다.
의문이란 마음이 명상하지 않고 들떠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 안에 있다.
밖에 있는 스승은 다만 우리 내면의 스승을 만나도록
그 길을 가리켜 줄 뿐이다.

받아들이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으면 놓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말수가 적어야 한다.
말은 생각을 어지럽힌다.


<법정스님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뽑았습니다>



음악: Gate Gate Para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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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을 그리며2007.01.31 15:19 | 법정스님 | 야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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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을 그리며






오늘 저는 계속 양방언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왜 이 노래 속에서 법정 스님을 떠올리는지..?
오늘 이 밤 저는 그 분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 분의 꼿꼿한 그 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법정스님의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소유와 영혼의 모음 두권 밖에 없었는데
그 책을 읽고 뒤에 번역하신 불서들을 힘들게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그 분을 찾아 뵈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지만
실제 스님을 찾아뵌 것은 대학 입학 후 7일인가 지나서였습니다.
제 방랑의 제일 시초였던 분이시지요. 법정스님이.. 
당시 불일암에 계시던 법정스님을 물어물어 혼자서 찾아 갔습니다.
 
혼자 그곳 암자까지 찾아 들어온 여대생에게 
스님은 아무 말씀없이 그냥 차를 한잔 끓여주셨습니다.
저도 그때의 그 적막함이 너무 좋아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차를 홀짝거리면서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도 저는 법정스님을 몇번 더 찾아뵈었고
갈 때마다 고요히 차를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님을 뵙기 위해 송광사 수련회에도 몇번씩 참가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송광사에 있을 때 일입니다.
당시에는 법정스님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서
불일암을 찾는 이들이 제법 많을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아랫 절에서 행사가 있어서
부엌일을 하시는 보살 아주머니나 행자 스님 두 분이 모두 점심이 늦어졌습니다.
마침 법정스님도 출타중이고 계시지 않은터이라
행자스님들은 보살 아주머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그냥 한 상에
밥을 차려놓고 허겁지겁 먹고 있었나 봅니다.
그때 마침 출타하였던 법정스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는
얼마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행자들을 야단을 쳤는지
적은 것에 흩뜨려지면 큰 것도 흩뜨려지게 되어 있다고...
불일암에 갔던 친구들이 혼비백산하여 내려와서
법정스님의 그토록 얼음짱같은 매정함을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당시 법정스님은 지금보다 더 냉정하였고,
애써 불일암에 찾아 온 사람들을 본척도 하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제법 원성을 들을 때였습니다. 그때의 비난이 상상이 가시지요?
꼭 그렇게 따로 상을 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부엌일하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한술 뜨려했는데..등등


근데 저는 그때 그런 법정스님이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음!
자신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깨어있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
어떻게 수행자라고 하겠습니까?
그 철저함. 그 분명한 자각이 한없이 저는 좋았습니다.
 
이후로도 저는 법정 스님을 뵙기위해
그 분이 나타나는 장소들을 제법 찾아 다녔습니다.
그 분 스스로 사람들을 피해 은둔해버렸기에..

 
몇년 전에는 길상사 수련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해 수련회는 법정스님께서 강사로 5번이나 나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신청을 하고 이제 정말 노쇄한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였습니다.
저도 늙었지만 저만큼 스님도 늙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근데 스님은 마치 30대 청년처럼 정정하게
전혀 흩트러지지 않은 몸가짐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빳빳한 먹물 삼베옷 가사를 걸치셨는데
스님께서 늘 몸소 옷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서 입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그 삼베옷이 얼마나 정갈하든지...
혼자 몸으로 산 속에 사시면서도
그 자세..그 차림 어느 하나 허술함이 없었습니다.



강의 이틀째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전날 밤부터 내리던 비가 이제 완전히 퍼붓듯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휴식 시간이었는데 그 비속에 모두들 낮잠을 취하기도 하고
잡담을 하기도 하곤 하는데..
불현듯 어제 새벽 산행에 길상사 뒷산에서 본 작은 폭포가 떠올랐습니다.
이 엄청난 빗속에 그 폭포의 물 떨어짐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어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산 하나를 바쳐들고 그 빗속을 뚫고 산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걸어 폭포에 이르니
그 빗속에 나보다 먼저 와서 폭포의 장관을 넋을 잃고
바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아! 그 분은 법정스님이셨습니다.
완전히 폭포의 흐름에 동화된 듯 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넋을 잃고 폭포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분의 그 고요를 차마 깰 수가 없어서
저도 그냥 옆에서 한참을 자연이 주는 그 엄청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법정스님께서 먼저
곧 날이 어두워 질터이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빗속을 우리는 고요히 서로의 침묵에 빠져 묵묵히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도중에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법정스님은 가시다가 몇번이고 길을 멈추곤 하셨는데
한참 후에야 길이 험하거나 웅덩이가 있는 부분에 내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스님 저는 산이라면 아주 베테랑이니까 아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하였더니
헐헐 웃으시면서 "베테랑, 좋지." 하시고는 어떻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짧게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요.
뭐가 어떻는지를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기에..
 
조금 앞정 서 걷는 법정 스님의 꼿꼿한 허리를 바라보면서
왜 이제 이 분을 뵙는 것이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지...?







그 이후 아직 저는 법정스님을 다시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간간히 노쇄한 그 분께서 깊은 산중에서 홀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오늘 이 음악을 들으면서 왜 이토록 법정스님이 떠오르는지...
아니면 계속 추운 겨울을 나시는 법정스님을 내심 계속 염려하고 있었는지..
이 밤 오늘 저는 못견디게 법정스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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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스님


자기로부터 출발해 세상과 타인에게 도달하라.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자 진리의 세계이다.

여기 삶이라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아래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왔다가 떠난다.
때로는 미물의 몸으로
때로는 동물의 몸으로
인간의 몸으로, 여자와 남자의 몸으로
그렇게 몸을 바꿔가며 삶이라는 나무아래 앉았다가 간다.

그대는 이 나무아래에서 무엇을 깨닫고 가는가?

그대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업가든 스님이든 정치인이든 배우이든 택시 운전사든
그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깨달음을 이루는가이다.

그대는 하나속에 전체가 있음을 깨닫고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사람을 위하는 삶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자아의 울타리에 갇혀 살아가는가?
그것에 따라 삶이 감옥이 되기도 하고
성스런 보리수 나무가 되기도 한다.

하나는 곧 모두이고 모두는 곧 하나이다.
하나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 하나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커다란 생명에서 나온 존재들
남이란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이다.

세상에 단 한사람으로서 초대 받은 우리는
서로에게 복 밭이자 선지식이다.
살이 있는 스승은 먼데 있지 않다.
지하철 안에서 만날수 있고, 시장바닥에서 만날수도 있다.
다니는 직장안에서 , 혹은 가정에서
살아 있는 참 스승을 만날수 도 있다.

자기로부터 출발해 세상과 타인에게 도달하라...







법정(法頂·78) 스님이 지병 악화로 입원 중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관계자는 "거처인 강원도에서 요양하던
스님이 작년에 제주도로 옮겼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고 5일 확인했다.

"의식은 또렷하나 병세 자체가 호전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는 전언이다.
법정 스님은 지난 3~4년간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봄·가을 서울 길상사에서 열리는 정기법회에도
지난해 4월19일을 끝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와병 중에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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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아름다운 마무리22010.03.05 22:24 | 법정스님 | 야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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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에서 때로는 지녔던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 버리지 않고는
묵은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우리들이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 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즉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한다.
인정의 샘이 넘쳐야
나 자신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가리켜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집착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삶은 유희와 같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 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사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홀로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밤이 이슥하도록 글을 읽다가
출출한 김에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해서
우물로 물을 길으러 간다.
때마침 둥근달이 우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바가지로 물과 함께 달을 길어 담는다.

하던 일을 마저 하다가 뒤늦게 생각이 나서
길어 온 샘물을 끓이려고 다로의 차관에 물병을 기울이니
함께 길어 온 달은 그새 어디로 새어나가고 없다.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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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아름다운 마무리12010.03.05 22:24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10 주소복사





오늘 오후 채소밭을 정리했다.
고랭지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오이넝쿨과 고춧대와 아욱대 등을 걷어 냈다.

여름날 내 식탁에 먹을 것을 대 주고
가꾸는 재미를 베풀어 준 채소의 끝자락이
서리를 맞아 어둡게 시들어 가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가꾸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심각함과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다.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자연뿐임을 아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맑은 가난과 간소함으로
자신을 정신적 궁핍으로부터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 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불필요한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서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안다.
문명이 만들어낸 온갖 제품을 사용하면서
‘어느 것이 진정으로 내 삶에 필요한가,
나는 이것들로 인해 진정으로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하여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머지않아 늦가을 서릿바람에
저토록 무성한 나뭇잎들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빈 가지에 때가 오면
또다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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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2010.03.05 22:29 | 법정스님 | 야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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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은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 

 

홀로 있지 못하면
삶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는다.

홀로 조용히 사유하는,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그런 시간이 없다면
전체적인 삶의 리듬 같은 것이 사라진다.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해지고 순수해진다.
이때 명상의 문이 열린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중심 잡힌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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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동영상과 글2010.03.05 22:33 | 법정스님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514 주소복사






미련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른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무소유 중에서)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다.
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법구경 중에서)
 
 

단순하고 더 소박하게
적게 가질수록 더 사랑할 수 있다.
그것마저도 다 버리고 갈 우리 아닌가

(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

 
 
꽃은 날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겉모습은 어제의 그 꽃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제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로
그날을 활짝 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을 더 단순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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