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동영상과 글2010.03.05 22:33 | 법정스님 | 야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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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른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무소유 중에서)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다.
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법구경 중에서)
 
 

단순하고 더 소박하게
적게 가질수록 더 사랑할 수 있다.
그것마저도 다 버리고 갈 우리 아닌가

(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

 
 
꽃은 날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겉모습은 어제의 그 꽃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제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로
그날을 활짝 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을 더 단순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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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 (유서) 라도 첨부되어야하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 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같은 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라빛 노을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한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져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하여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어버리고
작을 때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와 말을 더듬는 장애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었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다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에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쫒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 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 우파니 샤드> 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 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음으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본래 무일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밭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 없는 이.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간단 명료한 것을 즐기는 성미이니까.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거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은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다비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중 같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 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사세송(辭世頌) - 석옥청공(石屋淸珙)

白雲買了賣淸風 백운매료매청풍
흰 구름을 사려고 맑은 바람을 팔았더니

散盡家私徹骨窮 산진가사철골궁
살림살이가 바닥나서 뼈에 사무치게 궁색하네.

留得數間茅草屋 유득수간모초옥
남은 건 두어 칸 띠로 얽은 집 하나뿐이니

臨別付與丙丁童 임별부여병정동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마저 불 속에 던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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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는 그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그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는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때도 이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떨어져 내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때 만큼 아름답지 않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생사관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죽어가는 것이다.


현자는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죽음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정스님 ...살때와 죽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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